소진된 물질들의 에코그래피

강수미·미학, 동덕여대 교수


16t의 무쇠로 무지막지하게 만든 검은공과 1g이 채 안 되는 콜타르 용액은 어디서 만나는가? 몸체 전체가 쩍쩍 갈라져 그 틈새마다 검은 기름때로 눅진한 낡은 침목(枕木)과 바늘 한 점 꽂을 데 없이 단단한 흑색 석탄덩어리는 또 어디서 접점을 갖는가? 그것들 모두가 여타 소소한 사물들보다 자체의 강력한 물질적 속성을 외관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니면 그것을 마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로부터 제각각 다르지만 지각의 강도 면에서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질량, 밀도, 부피, 색채, 형태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 다양한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정현의 경우에 한정하면 그것들은 조각의 지평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넘치는 강렬함과 표현성을 내장한 물질들은 정현의 창작세계에서 ‘인간’이라는 근원적이고 현실적인 예술 주제(기의)를 가시화하는 모티프(기표)로써 접점을 형성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조각에서 인간의 몸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드로잉에서 인간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 쪽 또한 나이다. 여기 감상자로서 나는 그의 작품들이 내뿜는 막대한 물질적 존재감, 언어를 희박하게 만드는 시각적 표현력, 관객과의 즉물적(literal) 조우를 유도하는 설치의 힘을 인간적인 의미나 맥락으로 약화시키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국내 굴지의 철강회사에서 만들어 사용한 일명 ‘파쇄공’이 10여 년 간 25m 높이에서 수직 낙하돼 쇠의 불순물을 정제하는 동안 16t에서 8t으로 소진된 과정을 인간 시련의 역사와 유비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수십 년간 기차 하중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견뎌온 선로의 버팀목을 삶의 무게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인간 운명에 대한 존재론적 비유로 해석하거나, 검붉게 녹슨 철근들이 얽히고설킨 형상을 인생의 신산(辛酸)한 속성과 유비시켜 논하기를 원치 않는다. 통상 그런 해석이나 논리는 여차하면 센티멘털리즘으로 변질돼 사람들에게 상투적 위로만 남기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나의 비평 방향과는 상관없이, 혹은 그런 차원에 앞서서 작가는 애초부터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작품을 했을 수 있다. 다르게는, 인간과 인간형상의 면대면 관계 및 교감에 자기 작업의 가치를 설정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오래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실존상, 뻥 뚫리고 찢겨지고 일그러진 절박한 인간의 순간순간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고 한다.” 1992년 《월간미술》에 기고한 작가의 글에서 발췌한 이 문장은 조각가 정현이 둔중한 진흙덩이를 각목으로 퍽퍽 쳐내고, 딱딱한 석탄덩이를 끌로 깍깍 파 들어가고, 찐득한 콜타르를 종이 위에 쫙쫙 그어나가는 촉각적 표현법으로 무엇을 가시화하고, 어디에 도달하고자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문맥상 여지가 없듯,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시각적으로 수사(修辭)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휴머니즘적 미술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니 질척거리는 감상주의가 두려워 그의 미술에서 인간을 피하려 한 나는 틀렸다.  

물질과 인간의 정밀 조영(照影/造營)
 그런데 정현의 조각이 인간을 은유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좋다고 느낀 것일까? 그의 작품들이 감상자의 휴머니즘적 정서를 어루만지므로 감동적인 것인가? 둘 다 맞다 해도,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제까지 작가 자신은 물론 여러 논자들이 그의 작업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인간을 향한 가치를 발견했거나, 반대로 인간적 가치를 통해 그의 미적 세계를 정의했다. 하지만 결코 감추거나 위축시킬 수 없는 정현 조각의 어떤 면모는 그 같은 순환논법과 순치된 인문주의로는 밝혀낼 수 없어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유는 사물/대상의 존재(objecthood) 자체, 행위(performance) 자체, 사물의 질서(order of thing) 자체가 정현의 미술을 결정화하는 절대적 속성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인간중심주의의 의미망으로 포착할 수 없는 객체다. 어떻게 우리가 아스팔트 길닦이에 쓰는 아스콘의 질적 상태를, 기찻길 침목들에 가해진 압력의 강도를, 녹슬고 삭고 붉은 부스럼을 일으키는 금속의 시간과 생태를 인간적으로 전유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 물질들이 정현이라는 미술가의 개입을 통해 산맥처럼 강인한 인간 육체의 누운 모습을 연상시키는 조각이 되고, 대지 위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선 인간 군상을 암시하는 설치작품이 되고, 자코메티의 그것처럼 바짝 마른 남자 입상을 환기시키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런 논의는 작가의 미술이 그간 어떻게 전개돼왔는지를 살펴봐야 균형을 이룰 것이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현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고 개인전 개최와 함께 도록을 발간했다. 거기 글을 쓴 학예사 박수진은 작가의 작업세계에 대해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는 인체의 역동성이 표현상의 중심을 이루었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재료와 도구가 중심이 되면서 제작과정상의 우연성이 드러난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재료의 물질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기”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러한 시기 구분에 동의한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작가의 최근작을 고려하면, 그 변화의 핵심을 좀 더 구체적으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정현은 마닐라삼에 석고를 묻혀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콜타르를 착색한 인체 조각에 매진하던 초기, 예술의 이름 아래 질료를 통치해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 맞다. 하지만 점차 물질들의 본래 성질과 우연하고 가변적인 외적 조건에 자신의 예술적 의도와 표현 방식을 반향(echo)해가는 식으로 이행했다. 즉 작가의 조형적 목적에 물질들을 종속시켜 시각적으로든 의미상으로든 인간과 닮은 형상을 빚어내는 데서, 물질 자체가 발산하는 특성 및 주변 맥락에 작가의 의식과 감각이 메아리치듯 반응하는 식의 작업으로 나아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얼마 전 17번째 개인전에 내놓은 ‘8톤의 파쇄공’에 이르러 정현의 조각은 한 사물의 존재부터 주어진 질서까지, 물(物) 자체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제시하는 미술의 완성형에 거의 도달한 것 같다. 인간 형태적으로(anthropomorphic) 전유되거나 인간중심적 의미로 해석되기 전에 물질이 가진 자체의 속성과 외관, 그리고 그 물질이 온몸으로 겪은 전(全)역사를 긍정하는 미술이 그것이다. 이 미술은 그럼 비인간적인가? 이 미술에는 인간이 부재한가? 그렇지는 않다. 인간의 몸을 닮은 그의 1980~90년대 조각은 물론 격렬한 감정의 인간 얼굴을 연상시키는 요 근래의 드로잉들과 마찬가지로, 정현의 최근 조각에 인간은 근본 축으로 내재한다. 예컨대 파쇄공 조각처럼 물 자체인 작품에도 말이다. 다만 관계의 방식이 달라졌다.
 이전 작품들이 말하자면 물질의 물질성을 녹여내 인간이라는 의미를 상징하고 표현하고 추상하는 데 창작 의의를 둔 것이라면, 현재의 작품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즉각적이면서 즉물적인 반향을 목표로 한다. 이때 반향의 첫 인간은 그 물질과 조우하고 거기서 예술의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 자신이다. 하지만 그 물질이 일종의 ‘발견된 오브제’로서 미술작품으로 전시되었을 때 불특정 다수의 감상자가 얼마든지 그 인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녀는 거대한 크기와 무게감, 단단함, 그러면서도 긴 세월 강물에 잘 깎인 조약돌처럼 매끈함과 군더더기 없음을 갖춘 검은 파쇄공과 대면해 그 객체가 발현하는 객체성에 신경감응하며 특정한 상을 그리게 된다. 그 상을 우리는 감상자 주체의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 단정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10년간 셀 수 없이 많은 횟수로 공중 낙하하면서 물리적으로 마모된 거대한 무쇠 공은 사람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동시에 간단히 말로 할 수 없는 응축된 통증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해 의미를 그렇게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우리는 그렇게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 쇠공의 지금 여기 상태에 감상자가 감응해서 부지불식간에 드는 판단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보는 이의 주관과 심리에 있지 않고 대상의 질적, 물리적 상태로부터 발현돼, 보는 이의 지각과 의식에 현상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정현의 몇몇 조각에 에코그래피(echography, 照影)라는 용어를 적용하고 싶다.  
 에코그래피는 의학에서 ‘초음파 검사법’ 또는 ‘초음파 조영술’ 등으로 불리는 진단법인데, 쉬운 예로 태아의 초음파 사진처럼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신체 내부의 상태를 고주파를 이용한 반향그래프(echo-graph)로 알아내는 방식이다. 데리다는 이를 철학적 논쟁에 도입해 인간과 텔레비전 사이의 상호작용을 내재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그와 비슷하게 나는 에코그래피의 방식이 우선 작가 정현과 그가 주목한 현실의 물질들 사이에 작동했고, 나아가 잠재적 관객의 미적 경험과 물 자체로 제시된 그 물질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유추해본다. 작가가 절반으로 마멸된 파쇄공, 해체된 침목, 부러진 철근 마디를 두고 “잘 겪은 시련은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러니까 그 아름다움은 의인화된 것이 아니라 정현이라는 인간의 눈과 피부에 투영된 물질의 질적, 외형적 상태다. 그것은 우리 앞에 일시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고유의 내력으로 그렇게 존재하게 된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여기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미의 주체와 객체 관계를 이렇게 역전시키고 복합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현의 최근 작업은 ‘인간’을 다른 지각의 조영술로 새롭게 조영(造營)하는 중이라는 비평이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안대웅


2014.6월호

“엄지발가락은 인체 중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발의 기능은 인간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직립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구성한다...그러나 그의 발로 서서 어떤 역할을 하건, 인간은 가벼운 머리를 가지고 있다...상승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인간생활을 상승에 맞추려 한다...인간의 생활에는 불결한 것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이상적인 것에서 불결한 것으로 넘나드는 사실에 대한 분노, 발과 같은 저열한 기관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엄지발가락(The Big Toe)」

가늘고 말라 비틀어진 조각이 있다. 스스로 지탱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이 조각은 언뜻 인간을 닮아 불길하다. 더럽고 거칠어 보이는 표면은 위험해 보인다. 만지는 순간 사악한 주술에 걸릴 것만 같다. 이 조각이 환기시키는 것은 이처럼 ‘아름답지 않은’ 감각이다. 만약 고전 조각의 이상을 밤하늘의 별에 비유할 수 있다면 바타유를 따라 이 조각을 “엄지발가락”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정현의 조각은 조각의 비천함을 드러내는 조각이다. 조각을 해체함으로써 조각으로 나아가는, 그런 조각이다.

고양시 덕은동 한 촌락. 조선시대부터 살기 좋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다는 이 마을은 과거 쓰레기 매립지 용도로 쓰였던 난지도의 여파로 오래도록 방치돼 있었다. 아직까지 저개발 상태지만 조용하고 공기까지 상쾌해 작업하기는 딱 좋은 곳이다. 최근엔 그린벨트가 풀린 탓에 투기 열기가 한창인 모양이다. 새로 지어진 조립식 주택이 드문드문 보이며 새파랗고 쨍한 녹색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곳에 조각가 정현의 작업실이 있다. 자연의 숭고함을 뒤로 하고 인간의 욕망을 앞에 둔 채, 정현은 오늘도 작업 구상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이곳에선 아무리 둔한 사람이더라도 정현 작업의 요체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작업실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대덕산이 근작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말라비틀어진, 왜소한 나무 이미지의 기원을 잘 대변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뒷산 숲길을 산책한다는 작가는 숲 속에서 자연의 치열함이 주는 경이를 발견했단다. “나무들끼리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는 경쟁이 인간사보다 훨씬 치열하죠.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지만 안속으로 들어가 보면 말라비틀어지고 비바람이 불면 고꾸라져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생존과 관련된 긴장감이 항상 감돕니다. 낭만적 풍광이 아니라 사람 사회보다 더 치열하게 투쟁하는 풍경, 그 거친 원시성이 마음을 끌어당기더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무를 그리게 됐어요.”

그가 조형해내는 앙상하고 메마른 나뭇가지와 풀, 뿌리를 연상시키는 폐철근으로 만들어진 조각의 뭉치는, 그런 점에서 아름답다기보다 추하다. 풍요롭기보다 척박하다. 부유하기보다 가난하다.

드로잉은 어떤가. 감각을 그때그때 쏟아내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다는 드로잉은 대부분 콩테나 콜타르로 후려갈기듯이 그렸다. 뾰족뾰족하고 거칠고 메마른 터치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데 딱히 무엇이라 부르기 애매한 형상이다─말하자면 풍요로운 자연이라기보다 오히려 척박하고 황폐한 재앙으로서의 자연, 말라비틀어진, 더럽고 거친, 불규칙적인 표면, 건드리면 바스라질 것 같은 강도, 둔탁하게 다듬어진 (그런 면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덩어리감, 아찔할 정도로 여과 없이 드러나는 물질 그 자체, 기원, 꿈과 환상, 원시성에 대한 매혹과 동경.

최근 수년간 키워온 이런 생태에 대한 관심사는 사실, 정현이 청년 시절부터 천착해온 대주제인 ‘인간’에 대한 관심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예술가라면 누구나 숙명처럼 안고 있는 기원에 대한 궁금증과 의구심을 평생에 걸쳐 탐구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그림도 못 그리는데 사고능력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유독 누구보다 자기반성에 치열했던 사람이었다. 80년대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대학을 다닌 정현은 천성이 유약한 탓에 그 어느 편에도 서지 못했다. 홍익대 재학 당시 탈춤반에 들어가서 좌파 성향의 학우들과 어울려도 보고, 몇 번 데모에 가담도 해봤지만, ‘예술가로서의 나’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유보와 관찰. 그렇게 대학원까지 보내고 늦은 나이에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난 파리 유학길. 타지의 대학에서 정현은 혹독한 시험대를 거쳤다. 한국에서 배운 인체를 조형하는 숙련된 기술 자체가 파리에선 통하지 않았다. “너의 작업에는 시적 상상력과 철학이 안 느껴져”라는 질책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하니까.

정현은 인체를 만들고 부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거절의 거절. ‘나란, 내 작업이란, 조각이란 무엇일까’라는 기원에 대한 갈증. 나중에 가서는 급기야 손에 익은 헤라(조소 전문가용 칼)를 버리고 둔탁한 망치와 도끼를 들 수밖에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쇳덩이를 후려친다. 바로 그때, 정현은 번개를 맞은 듯한 인식론적 전환을 경험했다. 쪼개짐과 둔탁한 파임 속에서 이전까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상성을 발견한 것이다─지금까지 고전주의적 이상적 인간 형상에 틀지워져 보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시각성, 아니 파괴적인 촉각성, 기원을 파괴하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형상에 반하는 (조르주 바타유가 “비정형”이라고 불렀을) 가장 낮은 단계의 (비)형상성.

비로소 정현은 낡아서 버려진 비천하고 저급한 것들에 매혹되기 시작한다. 대리석 안에 이미 실재하는 천사를 단지 꺼내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미켈란젤로식의 이상주의보다, 재료가 겪은 시련과 세월, 변화와 이동의 작동 방식 그 자체─바타유식으로 말하자면 “한 마리의 거미나 침 뱉는 행위”─가 작업의 요체가 되었다. 정현은 이런 물질의 상태를 그대로 미술에 가져다 놓는다. 그렇게 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한 철로용 침목은 오랜 세월 비, 바람과 육중한 하중을 견뎌낸 후 남은 폐자재이며, 2000년대 중반 작가가 불현듯 사용한 아스팔트 콘크리트 또한 석유의 가장 낮은 단계, 찌꺼기로 만들어진, 그마저도 닳고 부서져서 용도 폐기된 쓰레기다. 말라 죽어가는 썩은 나무를 끈질기게 드로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소마미술관 야외 공간에 전시한 쇠구슬 ‘파쇄봉’도 순수한 철을 정제하고 남은 폐철근과 불순물이 오랫동안 서로 엉겨붙은 결과란 점에서 맥락과 다르지 않다.

요컨대, 정현의 작업에서 표명되어온 인간에 대한 관심은 뒤집어진 인간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말라비틀어지거나 덕지덕지 엉겨 붙은 조각의 표면은 대개 게슈탈트적 차원에서 인간의 얼굴 같은 형상을 투사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 때 보는 것은 사실 두상이라기보다 비정형적인 조각의 표정이며, 오히려 신음이나 비명소리일텐데, 대부분 붙어있는 <무제(untitled)>라는 작업의 제목이 시사하듯 그러한 규정조차 한갓된 것이다. 이 모든 형상은 사실 인간이 아니다─저급한, 물질에 불과하다. 그 강력한 척박함이 이내 고개를 내미는 순간, (형상의) 죽음이 선언된다. 환기된 구문론적인 혼동─시각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인간적 형상과 실제 사물 사이의 기호학적 긴장 관계─과 함께 작업-물질의 저급함은 인간의 실존적 이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바타유는 어느 책에선가, 구석기 동굴벽화에서 인간 형상이 사실적인 동물 묘사와 달리 일관되게 훼손되거나 왜곡돼 있는 것을 두고, 인간의 예술 행위가 자기 훼손의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정현의 조각에서 나타나는 인간주의적 관심은 외려 인간 안의 반인간주의적, 원시주의적, 생태학적 관심으로 역전된다. 근작을 통해 그의 관심이 자연에 도달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반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자연이며, 가장 저급한 수준으로서의 자연이다.

따라서 정현의 조각을 무엇이라 부를 수 없다. 아니, 불러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그 자신의 이상적 층위를 혐오하고 끌어내리는 과정 가운데서,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 해체적으로 작동하는 수행으로, 바타유적인 의미에서 비정형 그 자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모든 의미를 빨아들이고 무효화하고 저급화시키는 블랙홀이자 인간에 저항하고 생태로 나아가는 조각이다. 정현의 조각은 이런 점에서 한국 조각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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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woo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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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컬처』 조각가 정현

비물질의 물질적 유비

조은정(미술평론가)


  조각가 정현과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힘’이다. 나는 그가 ‘힘’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무형의 강렬한 어떤 것을 물질로 형상화 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는 분명 사전에서 설명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내부에서 솟구치는 무형의 에너지이자 그로 인해 다르게 변해버린 결과로서의 물체 자체로서 ‘힘’이란 언어를 채택하는 것이었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무쇳덩어리를 마주하였던 학고재의 개인전에서, 공간에 설치된 조각의 수보다 벽에 걸린 드로잉이 더 많았던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쇠를 때려 부수는 쇠공, 쇠의 부식을 막는 돌과 나무가 녹아내려 형성한 끈적하고 검은 액체 타르(tar), 타르가 스며들어 타르 자체처럼 보이는 침목(枕木). 응축되어 밀도가 높아져 폭발적 에너지를 갖게 된 물질들이 벽에서, 공간에서, 바닥에서 놀랍게도 부드러운 형상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다른 물성들을 관통하는 원리는 에너지의 드러냄, 힘이었고 그것의 형식화에 집중되고 있었다.  
  벽에 걸린 일련의 드로잉들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조차 영혼의 형식화, 정신을 형상화하는 태도 자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압축시킨 것이다. 특유의 냄새와 함께 돌과 비벼져 열과 압력이 가해져 돌처럼 견고하고 유연한 도로의 아스콘이 된 타르는 그 끈끈함의 성질로 종이와 쇠에 스며들어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얼기설기 엮어 골조로 표현된 인체, 각목으로 쳐대어 드러난 인간의 형상 등은 인간의 외형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그 극단의 형상들은 지치지 않는 정신, 인고의 세월에 대한 흔적이기에 ‘형상화한 태도’의 어떤 것인 때문이다.
  업악구조로 점철된 한국을 벗어나 프랑스에서 직면한 ‘태도’에의 요구에 그는 각목으로 석고를 무작정 패고 두들겨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답하였다. 형태의 깨부숨이 도리어 형상이 된 것은 도로포장을 제거하던 길거리에서 들고 온 아스콘 조각을 바닥에 널부러뜨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간 뜨거운 마찰열과 무게를 감당해온 침목을 기찻길에서부터 받아 들고 와 도끼로 살을 발라내던 때도, 전봇대와 철근을 이어붙인 나무를 땅속에 박아세울 때도 어떻게 정신을 형상화할 것인가 즉 ‘영혼의 형식’화에 천착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물체에 ‘힘을 가해온’ 작가가 주물공장의 도구인 쇠공을 들고 와 전시장에 놓기까지에는 고심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06),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조선일보 2008), 한국평론가협회 창작 부문 수장자(2009)가 선택한 ‘쇠공’은 물질에 대한 작가의 간섭 부재에 대한 비판이라는 위험도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쇠공들은 그의 작업의 연장선에 놓였다. 두들기고 파내고 용접하는 행위가 감정의 드러냄이라면 물체 자체의 ‘흔적’은 물질과 에너지의 대결을 구체화한 형식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는 조각에서의 에너지를 “하찮은 것에서 발견되는 신성함, 날 것에서 나오는 생명력, 예측을 불허하는 이미지, 느닷없음, 비탄으로부터의 해방,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헤매임들의 깊이”(박수진과의 대화)라고 정의내렸다. 그런 점에서 쇠공의 등장은 질료적인 만남이나 조우(遭遇)와는 다른 해방, 자유와 같은 상징의 틀을 입게 된다.
  공사장에서 버려지는 각목으로 형상화된 인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뜯겨지는 아스팔트, 설치 기한이 지나면 버려지는 침목, 주물공장에서 용도폐기된 철근과 이제는 사라지는 전봇대 그리고 육중한 무게로 다른 쇠들을 변형시킨 쇠공이 긁히고 닳아 형태가 변하여 공중에서 내려지는 시점. 거기에 작가는 간여한다. 그 용도폐기의 순간에 물질은 작가의 정신을 입고 질료화 한다. 크기와 무게감, 시각적 체험만으로도 느껴지는 단단함으로 압도하는 쇠공은 날것이 주는 자유, 하찮은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운다. 노동가치가 끊임없이 하락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조각가 정씨’가 선택한 쇠공은 꽤 괜찮은 노동자로서의 우리를 새삼 대면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