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과 일탈의 미학

- 정현의 작품에 대하여 -

 오광수 (미술평론가)         

 

        정현은 파리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왕성한 작업을 펼쳐보였다. 이토록 치열한 작업의 진행을 주도해가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는 일이다. 92년 원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97년 원화랑, 98년 프랑스 문화원의 개인전이 이어지다가 2001년 금호미술관, 2004년 김종영 미술관,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잇따른 미술관 개인전은 어떤 정점을 장식해주고 있는 인상이다. 최근 8년 사이 세 개의 주요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는 것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로 이는 정현의 작업이 갖는 분출하는 에너지와 주도한 창작의 집념이 어떤 공감을 이루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본다. 이는 결코 우연한 행운은 아니다.
 파리에서의 귀국 후의 그의 작업은 석고로부터 시작된다. 흙으로 만든 덩어리를 각목이나 삽과 같은 기구로 내려쳐 볼륨과 날카로운 단면을 만들어 이를 주물로 떠내었다. 이들 작품은 비교적 조각 본래의 양괴에 충실한 것일 뿐 아니라 소재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조각의 문맥에 밀착된 것이었다. 흙덩어리를 주물고 각목이나 삽으로 일정 부분 강한 물리적 반응을 가하여 일그러진 인간의 형상을 묘출해준 것들은 때로는 고뇌하는 인간상으로, 때로는 묵상하는 인간상으로 나타났다. 설명적인 부위와 날카롭게 깎아 내린 단면을 대비시킨 이들 인간상은 기념비적인 내연을 지닌 것으로 로댕의  발자크상이나 부르델의 배토벤 상을 연상케 하였다.
그가 에콜 데 보자르 시절 추구해보였던 형해화 된 인간상에 비하면 풍부한 볼륨을 지닌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미이라에 가까운 깡마른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아난 보자르 시절의 작품이 갖는 선적인 것에 비하면 양괴적인 요소가 되살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은 일정한 시기를 두고 환원과 일탈이 주기 화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적인 작업에 이어 양괴적인 작업이 나타나다가 다시 선적인 작업이 등장하고 이어 양괴로 다시 환원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때로는 이들 선적인 요소와 양괴적인 요소가 하나의 작품 속으로 융화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침목에 의한 군상 계열이 이에 속한다.
그가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초대전에 집중적으로 선보인 침목에 의한 작품은 그의 조각하는 태도 또는 조각에 대한 독자한 인식을 가장 극명히 보여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를 연결하는 긴 공간에 진열된 침목에 의한 인간상은 마치 진시황의 토용을 방불케 한 것이었다. 땅 속에 파묻혀 오랜 세월 지하에 있던 흙으로 만든 병사들이 밖으로 들어났을 때의 그 장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땅의 열기가 능히 몇 천 년을 견디어온 역사의 도저한 무게를 감당한 것이었는데 정현의 침목에 의한 인간상은 그러한 역사적 유물과 비교되면서 인간과 산업사회, 인간과 근대문명의 치열한 대결과 화해의 기념비적 형상으로 인상된 것이었다.
 정현이 침목에 관심을 기우린 것은 꽤 오래 되었다. 그의 말처럼 침목을 발견하고 바로 그것을 재료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방치된 상태로 놓아두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재료와의 만남이 단순한 사용자와 대상으로서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순치되는 일정한 시간을 경과한 후(그는 약 10년 간 놓고 보았다고 한다)에 작업에 임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발견이 곧 창작이 될 수 있는 내역을 말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은 발견하는 것도 창작이라고 하였는데 정현이 침목을 발견한 순간 이미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느 날인가 버려진 침목을 본 순간 레일 아래에서 육중한 무게와 비바람을 묵묵히 견뎌온 인고의 세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침목이 한 인간이란 역사처럼 다가온 것이다.” 그의 말은 침목을 단순한 재료, 물질로서 본 것이 아니라 인고의 세월을 한 몸에 지닌 인간의 역사로 보았다는 것이다. 침목의 군상이 그토록 강열하게 어필해오는 것은 침목이 버려진 재료의 사용이란 점에서도, 조각으로 다루기에는 적절한 재질이 아님에도 이를 극복해주었다는 점에서도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고의 역사로 다가왔기 때문에 감동을 준 것이었다.

정현이 선택하고 있는 재료는 대부분 버려진 , 용도가 폐기된 질료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버려진 질료란 상당 부분 산업 쓰레기일 것이 분명하다. 침목이 그렇고 아스콘이 그렇고  막돌이 그렇고 철근이 그렇다. 그것들은 어떤 용도에 사용되었다가 용도가 다한 것이다. 버려졌다는 것은 용도가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질료들이 정현에 의해 발견되고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작업장에는 이렇게 버려진 산업 쓰레기들이 새로운 삶의 탄생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정현만큼 재료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조각가도 많지 않다는 것은 그의 전체적인 작업의 맥락을 통해 볼 때 새로운 재료의 만남과 대결 또는 순치의  과정으로 엮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과의 부딛침은 물질과의 만남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함인데 때로 격렬한 대응의 형식을 띠는 경우는 물질의 내면에 잠자는 본성을 일깨우기 위한 조치이다. “침목 작업에 들어가기 오래 전부터 침목 그 자체의 엄청난 에너지에 주목해 왔었다”는 말은 침목 속에 잠겨있는 에너지란 본성을 어떻게 끄집어 낼 까의 접근이기도 하다. 침목은 길게 이어지는 레일을 받쳐주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가 침목 속에 엄청난 에너지를 감지했다는 것은 침목이 지닌 역사성에서다. 단순히 레일을 떠받치고 있는 물질이란 사실 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지탱해왔다는 시간의 두께가 겹쳐진 것이기도 하다. 용도가 폐기된 침목은 레일을 받쳐주는 기능이 폐기되었을 뿐 그것이 지닌 인고의 시간의 두께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다른 폐기물에서도 이 역사의 무게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재료가 지닌 이 특별한 내재율이야말로 다른 조각가들에서 엿볼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선택하고 있는 재료는 조각 일반의 재료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청동에 의한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료가 생경한 것들이다. 과연 이런 재료로 작품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일어날 때도 있다. 창작에 앞서 발견이 그에겐 더욱 의미 있는 과정이 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살아 있음 그 자체, 날 것, 예측을 불허하는 이미지”가  그의 작품 전체를 관류하는 요체가 아닌가 생각된다. 생생한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나타내려는 의도나 다듬지 않고 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의 대담한 제시는 지금까지 조각이 시도해온 변형시키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체의 방법적 논리에 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일탈의 조각이 갖는 의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종영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은 주로 아스콘에 의한 작품이 중심을 이루었다. 침목이 철로 밑에 깔려있었던 질료라면 아스콘은 길바닥에 누어있었던 것이다. 침목에 못지않게 아스콘 역시 엄청난 시간의 무게, 역사의 겨를 지닌 물질이 분명하다. 침목이 조각의 재료로 발견되는 것보다 아스콘이 조각의 재료가 되는 것은 더욱 예상되지 않는 일이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스콘이 조각의 재료로 선택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도 그는 날것에서 오는 생명력, 거칠고 팽팽한 표면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생명의 에너지를 발견했음이 분명하다. 아스콘이 선택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막돌이나 석탄 덩어리를 그대로 조각으로 가져올 수 있었던 대담한 선택의 문맥에 이어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래 위에 설치된 아스콘 덩어리는 공중에서 내려다 본 산맥의 한 단면 같기도 하고 땅에 누인 인간의 모습으로도 유추되었다.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오랜 무덤 속의 미이라처럼 응고된 형상을 띤 것이었다. 다른 어떤 질료보다 생생한,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할까.

조각가로서 정현은 조각에 못지않게 많은 드로잉을 남기고 있다. 드로잉은 그에게 있어 조각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조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동시에 드로잉의 연장선상에서 조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종이에 연필로 하는 것도 있고 골타르와 같은 끈적끈적한 질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드로잉은 대체로 인간상 또는 인간의 신체 부위에 집중되었다. 일회적이기 때문에 드로잉은 다분히 직설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최근의 드로잉은 질료자체가 형태를 대변하듯 날카로운 필선 자체가 존재감으로 현전하는 것들이다. “가을을 지나 누렇게 누워있는 풀들을 철판에 드로잉했다. 착색된 철판을 철근, 톱으로 긁어내거나 자동차 뒤에다 철판을 메어서 자갈밭을 끌고 다니면 거기서 얻어지는 자연스럽고 우연한 흠집들이 산화되어 녹으로 바뀐 이미지 작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드로잉은 날카로운 필의 획, 형태보다 달리는 필의 획이 먼저 나타난다. 그린다는 행위에 앞서 그려지고 그린다는 행위보다 먼저 마무리된다. 물질에 강하게 부딛침으로 들어나는 필의 획이 갖는 날카로움이 날카로움 그 자체로 현전한다. 어쩌면 이는 그의 조각에서 들어나는 형태를 앞 질어 질료 자체가 들어나는 경우와 일치한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양괴적인 것과 선적인 것의 부단한 반복 현상처럼 수평적인 것과 대비적으로 수직적인 것의 반복현상도 지적할 수 있다. 아스콘에 의한 수평적인 형상에 비해 그가 최근 시도하고 있는 버려진 철근에 의한 수직적인 형태는 전반적으로 수직적 의지의 상승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미 수직적 형상은 현대미술관의 개인전 때 분명히 들어났다. 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기둥들은 그의 미래의 작품이 지닌 의도를 흥미롭게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작품은 폐기된 철근에 의한 수직의 의지를 표상한 것이다. 이 솟아오르는 형상은 최소한의 형태로서의 조각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가까스로 존재한다고나 할까. 조각이기도 하고 조각이 아니기도 한 경계 선상에 가까스로 존재하는 것, 형태이기도 하고 형태가 아니기도 한 간극 속에 가까스로 존재하는 것 , 그것이 발산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온통 전 공간을 거대한 탄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조각의 해방 혹은 탈주로

- 정현, 조각으로 철학하기-

 

김종길 | 미술평론가

‘만들기’에서 ‘배치하기’로
정현의 조각은 일견 전통적인 조각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그의 조각분석을 위한 이론은 자칫 지나치게 실존(주의)에 기대거나 조형적 형상론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실존과 무관하거나 형상성이 취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강해서 탈이라면 탈일까. 그래서 이론가는 해석의 편차를 넓히지 못하고 쉽게 그것에 매료되거나 자주 혼란에 직면한다.
정현의 조각을 입체적이면서도 사려 깊게 살피기 위해서는 ‘조각가 정현’과 ‘(정현) 조각의 개념’, 그리고 ‘(그의)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해석의 트라이앵글인 [조각가-조각개념-작품] 이 셋의 구도는 명확히 구별되기도 하고, 이론가에 따라서는 굳이 구별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보통은 유기적으로 묶는 게 상식이다. 이 세 개의 개념적 주체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이론가는 해석의 편리성을 획득하고 또한, 개념적 키워드를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셋을 유기적으로 묶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면 어떻게 될까? 요컨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정현’은 조각가 정체성과 무관한 행보를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는 오직 조각만을 위해 살아가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작업실에 들어가 조각가로 돌변하는 순간 비로소 그의 조각가로서의 정체성과 조각개념은 발생할 터. 조각가 정현이 사회적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주체라면 그의 조각개념은 사회와 예술의 제도적 개념이되(‘조각’은 이미 사전적 개념으로 정의되니까), 동시에 그 개념으로부터 일탈하려는 ‘생성-의지’로서의 개념이고(‘탈-조각’을 지향하니까), 작품은 그런 주체와 ‘생성-의지’가 발현해 놓은 신생어(新生語)일 것이다. 우리는 그 일련의 과정을 ‘조각하기’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조각하기’는 결과적으로 어떤 물적 토대위에서 시작되고 하나의 ‘물성’으로 발현되고 있지만, 그의 ‘조각하기’가 반드시 물성을 갖춘 ‘조각품’ 제작에 목적성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트라이앵글의 개념을 유기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그의 ‘조각하기’에서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는데, 그는 인간의 신체에서 조각형상의 뿌리를 길어 올렸으나 마닐라 삼으로 엮은 석고, 철로용 침목, 아스팔트용 아스콘, 그리고 건축용 철근으로 이어지는 재질의 변화와 이에 따른 ‘조형적 변이變異’를 통해 기존의 조각개념을 해방시키려 들뿐만 아니라 신체에 갇힌 ‘인간의 비극적 실존’을 탈주하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붙이고 두들겨 깎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분들을 결합시켜 놓은 ‘배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조각은 만든 것들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를 다시 흩뜨려 배치함으로써 완성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들은 유기적 전체를 위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며 변용능력을 갖춘 부분들에 의해 ‘배치되는 것’이다.
그의 ‘조각하기’는 묶거나 다져진 흙․석고․청동으로 된 형상으로서의 어떤 덩이를 배치하기, 침목을 흩뜨려 배치하기, 아스콘을 흩뜨려 배치하기, 철근을 흩뜨려 배치하기로 풀어질 수 있다. 그는 이 ‘배치하기’를 위해 부분을 전체화하는 조각적 노동을 수행한다. 초기, 석고 작품을 위해 마닐라 삼으로 ‘묶는 행위’나 침목, 아스콘, 철근을 절단하고 붙이기 위해 사용한 전기톱과 용접봉은 그러므로 신체의 유기적 결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분으로서의 기관들을 ‘독립시키기’ 위해 작동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신체와 부분적인 기관들은 하나일 수 없다. 부분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전체이니까.

‘배치하기’와 ‘흩어지다’의 의미
그의 ‘배치하기’는 청나라 초기의 화가이자 이론가 석도石濤 주도제朱道濟가 지은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의 일획론一劃論 첫머리 “태고무법太古無法, 태박불산太朴不散, 태박일산太朴一散, 이법립의而法立矣.”에서 ‘산散’과 의미가 상통한다. 풀면, “아득한 옛날엔 법이 없었고, 큰 통나무도 쪼개지지(흩어지지) 않았다. 통나무가 한 번 흩어지니 비로소 법이 섰다.”인데, 여기서 ‘흩어지다’의 뜻은 인간의 유위적 행위를 가리킨다. 통나무가 순수 가능태로서의 기질이라면, 흩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거기에 어떤 예술적 행위를 가한 것, 즉 유위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 통나무가 흩어져야만(쪼개져야만) 조각이 생겨나고, 그런 ‘배치하기’와 ‘흩어지다’에 의해 미학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석고를 흩어지게 하고 침목을 흩뜨리는 것, 도로에 깔았던 아스콘을 흩뜨리고 철근을 흩어지게 하는 것 그 모두가 ‘배치하기’와 다르지 않지 않은가.
프랑스의 시인이자 연극연출가였던 앙토냉 아르토는 “신체는 신체다. 신체는 혼자이다. 또한 기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질 들뢰즈의 그 유명한 ‘기관 없는 신체’는 아르토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첫 샘물은 바뤼흐 스피노자였지만. 들뢰즈는 “기관들도 전체를 형성하지만, 이 전체는 부분들을 통일하지도 전체화하지도 않으며, 부분들 곁에 있는 전체로서 산출된다.”고 했다. 아르토의 ‘신체’가 배우의 몸에서 파생된 개념이라면, 들뢰즈나 스피노자의 ‘신체’는 사회와 관계 맺는 인간의 몸 그 자체이다.
정현의 조각은 전자일까(조각적 대상으로서의 ‘몸’) 후자일까(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몸’). 그의 작품의 시작이 198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에 등기대고 있단 점에서 후자에 가깝지만, 거의 모든 작품들이 표현적 리얼리즘의 고갱이를 ‘시학적詩學的 조각’으로 응결한 것이란 점에선 전자를 포용한다. 배우는 몸의 기관들을 유기체에서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훈련을 통해 ‘대사’라는 말의 언어를 몸 전체로 확장한다. 손으로 혹은 발끝으로 말하고, 등으로도 말하며 머리끝으로 말하지 않던가. 스피노자를 빌리면 배우의 몸은 “능동적인 변용의 능력을 통한 부분들의 결합체”인데, 정현의 조각이 그렇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신체를 마치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려는 듯 엮어서 연결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자기보존과 생성의 욕망’을 가진 부분들을 ‘신체형상’으로 배치한 것에 불과하다. 자, 한 번, 다시 읽어보자.
 
“기관들도 전체를 형성하지만, 이 전체는 부분들을 통일하지도 전체화하지도 않으며, 부분들 곁에 있는 전체로서 산출된다.”

‘부분들의 곁에 있는 전체’라는 말이 솔깃하지 않은가!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논고』(1665)에서 “민중은 왜 자신의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를 물었고,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그런 물음에 빗대어 “대중은 왜 억압을 욕망하는가?”를 따진바 있다. 사회든 국가든 계급이든 권력으로서의 전체는 부분을 예속화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부분도 전체의 부분으로서만 자유를 획득하려는 든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오류다. 68혁명에서 개별적 주체들은 이러한 전체와 부분의 ‘전체주의적 권력구조’를 수정하고자 했다. 들뢰즈가 68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한국사회의 변혁적 현실에서 정현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정현의 조각적 사유를 작품에서 연역적으로 찾는다면 그것은 들뢰즈가 따졌던 ‘욕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억압을 욕망하는’ 주체들. 그러나 그는 그 주체들의 전체보다는 부분에 주목함으로써 억압을 해체시킬 수 있었다.    
정현은 조각의 부분들을 전체에 예속시키지 않았다. 전체는 부분들의 곁에 있는 것으로 족하니까. 아니 전체는 부분을 위해서만 존립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특히 아스콘으로 제작한 작품들) 전체라는 ‘유기적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별적 부분들을 ‘형성시켜’ 잇거나 덧대고 조립하며 그저 배치할 뿐이다.

억압된 신체의 탈주
초기 작품들은 석고와 마닐라 삼으로 엮은 신체를 통해 ‘억압을 욕망하는’ 인간을 조형화 했다. 기관 없는 신체로서 이 조각들은 스피노자가 ‘예속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라고 지적했던 기묘한 자유의지를 엿보인다. 조각의 각 부분들이 전체와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적극적인 해방의 출구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체들은 ‘육체’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육질적이다. 어쩌면 그의 신체는 신체에 의해서만 신체를 획득할 수 있는 자기모순에 빠져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인간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갖춘 신체만이 신체로서의 형상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으로서의 모순.
그러나 침목과 아스콘으로 이어지는 행보는 억압을 해방시키려는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육중한 침목을 도끼와 전기톱으로 흩뜨린 뒤 다양한 형상으로 재배치 한 점이나 또는 도로공사를 위해 뜯어낸 아스팔트 아스콘을 도려내고 썰어서 마치 몇 개의 섬처럼, 산처럼 배치했으니. 설령 그것의 전체 형상이 인간의 신체를 유추해 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석고를 엮거나 두들겨서 만든 작품과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분출이고 폭발이며, 해방이고 탈주이기 때문이다.
철근 작품들에 이르면 그의 신체가 ‘인간의 신체’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이제 그의 신체는 모든 것들의 신체로 열려진 셈이다. 모든 부분들이 모든 존재들이고 그 존재들 사이에 전체가 흐르고 있다. 신체는 하나의 다리, 팔, 머리처럼 하나의 가지, 하나의 꽃, 하나의 대나무, 하나의 돌이 된다. 이러한 사유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철학이기도 한데, 17세기 조선의 학자 강백년은 “도로써 천지를 보고 천지로써 만물을 본다면, 나我 또한 물物이요, 물은 또한 나이다. 천지는 또한 만물이요, 만물은 또한 천지이다. 어떤 물이 나가 아니겠으며, 어떤 나가 물이 아니겠는가. 그런즉 내 몸이 하나의 태극太極일 뿐 아니라, 만물 또한 하나의 태극이며, 물물物物이 저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다. 천지 또한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과 만물이 일체이며 저마다 하나의 주체라는 얘기다. 그는 인간 혹은 사유하는 ‘나’만이 주체가 아니라,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주체일 수 있다는 평등안을 견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현의 조각적 사유가 넓어지는 지점에 그런 미학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닐까.
정현의 조각은 조각으로서가 아니라 조각의 해방을 위해 읽을 때 더 깊어진다. 그의 조각은 신체를 더 넓은 곳으로 탈주시킴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해방과 탈주의 드넓은 초원에서 그는 비로소 조각이 아닌 조각, 정의될 수 없는 조각, 하나의 물음이며 의문이 되는 조각을 상상하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와 조각, 작품의 매개 고리가 끊기면서 또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