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에 응축된 실존의 에너지 : 조각가 정현의 작품세계

정현의 작품세계는 인체와 재료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전신상, 두상, 토르소 형식의 인체를 암시하는 형상을 석고, 나무, 철과 같은 전통적인 재료로 제작함으로써 ‘조각’이라는 장르를 고수하고 있다. 1990년대의 작품에서는 인체의 형상성과 재료의 물질성이 공존하는 데 비해, 2000년대의 작품에는 형상성보다는 비전통적인 재료의 물질성이 두드러지지만, 정현의 작품 전반에서 인체와 재료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해 있다. 장르의 해체가 당연시되고 새로운 표현재료의 사용이 거의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시점에서 정현의 조각을 주목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가 꾸준한 활동과 더불어 전통조각가들이 조각의 재료로 사용한 적이 없는 침목,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석탄처럼 비전통적인 재료를 과감하게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정현은 1955년에 인천에서 태어났다. 1975년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하여 1982년에 졸업했고, 1986년에 홍대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1990년에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92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 2008년까지 서울과 동경에서 총 1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3년에는 중국 베이징비엔날레에 출품했다. 2004년에는 김종영미술관에서 제1회 ‘오늘의 작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2006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꾸준한 활동만큼이나 그간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아왔고,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론도 적잖이 축적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인체의 형상을 띤 작품에서 점차 인체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생략되는 대신에 작품의 재료를 매우 거칠게 다루어 재료의 고유한 성질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전개해간 노정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보다 주된 관심은 침목, 아스콘, 석탄 같은 재료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작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 1990년대, 실존의 에너지를 응축하다

정현은 프랑스 유학을 계기로 사실적인 인체표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홍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유학길에 올랐을 당시만 하더라도 정현은 다소 막연하게 사실적인 인체조각을 했던 것 같다. 파리 유학은 정현이 조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사실적인 인체표현의 한계를 발견하였고, 자신의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였다. 물론 프랑스에서의 미술교육은 구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발상을 이끌어내는 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잘 그리고 잘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 작가의 태도, 작업하는 자세’와 같이 작가로서의 근본적인 태도가 주된 교육이었다. 미술가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체득한 정현은 한국으로 귀국한 후 자신의 독자적인 조각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첫 번째 결과물은 형해(形骸)화된 인체표현이다. 작가가 ‘선조(線彫)’라고 명명하는 작품들은 석고로 인체의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마닐라 삼베를 감싸고 나서 콜타르를 입힌, 뼈대만 앙상한 인간의 모습이다(도 1). 이러한 형상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선 하나하나는 갈가리 찢겨진 정신들의 실존적 현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재료가 바뀌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 뼈대가 앙상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인체 표현을 지속해나갔다(도 2). 제1회 개인전 서문에서 평론가 오광수는 “인체 고유의 유기적인 생명을 뛰어넘어 인간이 처한 상황과의 관계에서 실존의 구조체를 지향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상황과의 대결에서 일그러진 인간 실존의 언어화를 추구했던 포트리에를 연상시킨다.”라고 언급하였다.
오광수의 지적대로, 이러한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사회에 팽배해 있던 실존주의 의식이 반영된, 세자르, 자코메티, 리시에 같은 조각가들의 불규칙하고 거친 피부를 지닌 인체 형상을 떠올린다. 특히 절망에 찬 듯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인물상(도 3)은 리시에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이후에 제작한 인물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도 4). 1988년부터 1990년대에 제작한 두상 형태의 작품들(도 5, 6)은 얼굴이 거칠게 뭉개지고 이목구비가 생략되었으며 물질감이 강조된 점에서 장 포틀리에의 <비극의 얼굴>(도 7)과 같은 전후의 앵포르멜 작품을 연상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파리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의 일그러진 인물형상과 마찬가지로, 정현의 작품들은 다분히 실존주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작가는 전후 사회의 불안과 실존의식을 담고자 했던 앵포르멜의 표현적인 작품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1997년 제2회 개인전에서는 파편화된 인체로 실존의식을 표현하는 조형언어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그의 작품은 “위기와 절망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꺼풀 벗겨낸 자화상” 혹은 “현대인의 내면의식을 담아낸 익명성을 띤,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해석되었다. 1990년대 작품의 조형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불규칙하고 거친 표현이 담고 있는 불안감과 긴장감은 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전후사회에서 느꼈던 불안감이나 고통의 표현만으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현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정현의 작업은 흙으로 형상을 만들고 삽이나 각목으로 흙덩어리를 내려쳐서 일그러뜨리거나 형상을 갈라낸다. 인체 형상을 만들 때 이처럼 삽으로 형상을 잘라 내거나 각목으로 흙덩어리를 내리쳐서 형상을 만드는 방식은 전통적인 조각 도구인 ‘헤라’나 손으로 형상을 다듬어 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인체의 세부는 생략되고 대신에 작가의 과감한 동작의 흔적만이 남게 된다. 제스처나 행위의 흔적을 통해 작가의 실존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작업도구인 각목이나 삽으로 흙덩어리를 내리치는 행위에는 실존의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삽을 가지고 거칠게 형상을 갈라낸 작품에서 보이는 수직적인 삽의 흔적에는 에너지가 있으며, 동시에 정현의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던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담겨 있다(도 8). 그러나 정현의 작품에서 각목과 삽질의 자국은 흙덩어리를 예술작품으로 환원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호이며, 그 결과물은 작가의 힘과 에너지가 응축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작품들은 흙덩어리로 작업을 했지만 결과물은 석고, 청동과 같은 전통적인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의 크기도 대부분 1미터 미만이다. 이들은 여전히 인체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 개념의 조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작품들은 좌대에 얹힌 상태로 감상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감정이 관람자와 직접 소통하기가 어렵다. 즉 관람자가 작가의 감정에 몰입되기보다는 작가의 감정을 대상화된 상황으로 바라보게 된다.

● 2000년대, 재료의 에너지와 조응하다

정현은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에 도전한다. 1990년대에는 석고, 청동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주로 사용하던 반면, 2000년대 이후로는 전통 조각에서는 사용된 적이 거의 없는 침목, 아스콘, 석탄 등을 즐겨 사용하였다. 침목, 아스콘, 석탄은 일부 실험적인 작가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재료다. 최근에 정현은 철근에 매료되었는데, 이러한 생경한 재료를 통해 정현의 조각은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여전히 인체가 암시되어 있지만 인체보다는 재료의 물질성이 강하게 부각된다. 서사적인 조형언어에서 벗어난 조각가들이 흔히 형태, 구조, 재료 등에 관심을 두듯이, 정현 역시 이러한 요소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침목이라는 재료의 발견은 정현에게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작가가 침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는지 모르지만, 침목을 작가의 의식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발견하고 활용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다. 침목을 작품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2001년경으로, 금호미술관 개인전에서 침목을 사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기차의 무게를 버텨온 침목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폐기처분된다. 건축이나 정원의 장식에서 재활용되기도 했지만 침목이 순수미술 작품에 활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정현은 “침목은 그 자체가 작품이며, 자갈에 찢기고 위에서는 기차가 짓누르는 가운데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수십 년을 버텨온 침목 자체가 이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비바람에 노출된 상태로, 그것도 무거운 기차를 떠받치며 견뎌낸 침목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정현의 침목 조각은 발견된 오브제를 그대로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선 <거꾸로 서있는 사람>(2000년)(도 9)에서처럼 작품제목이나 작품 형상에서 신체의 일부를 연상시키기는 작품이 있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쪼개진 침목 쪼가리를 반복적으로 겹쳐서 세워놓은 이 작품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다. 또한 인체의 일부를 절단한 듯 한 형상을 단단한 침목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도 10). 인체 형상이 내포된 작품들이 많지만 인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침목의 표면을 도끼로 내려치고 톱을 켜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작품들에서는 어떤 특정 형상들보다는 작업 도구의 흔적을 통해 드러나는 재료의 물질성이 두드러진다. 즉 침목을 끌이나 톱으로 자르고 패는 행위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침목을 통해 담아내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침목 자체의 힘과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행위라고 하겠다.(도 11) 이처럼 무거운 기차를 떠받치고 누워 있던 침목이 조각가의 행위를 통해 일어서고 해방됨으로써 힘과 에너지가 있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었다.
1990년대부터 흙덩어리를 각목이나 삽으로 내리치며 작가의 흔적을 남겼듯이, 침목을 도끼나 톱으로 자르고 파내는 행위 역시 작가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단단하고 질긴 침목의 표면에서 보이는 흔적은 유연한 찰흙의 표면에 남은 흔적과는 차이가 있다. 침목은 작가의 행위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완강하게 저항한다. 정현은 “재료와 맞붙거나 이기려 하지 않고 논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재료의 속성을 무시한 채 재료를 잘라 내거나 파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과감한 톱질과 끌질은 오히려 침목이라는 재료의 고유한 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이다. 그러면서도 침목 자체는 작가의 실존적 에너지를 담아내는 매개체가 된다.
무겁고 거대한 침목은 조각의 규모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의 작품은 대부분 1미터 미만의 크기였고 좌대 위에 올려 있어서 관람자가 작품과 분리된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침목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좌대 없이 전시장 바닥에 놓이게 되고 크기도 인체보다 훨씬 커지면서 관람자가 조각을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다 침목의 색과 냄새는 새로운 요소가 되어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람자는 조각과 동일한 공간 속에서 작가의 에너지와 감성을 더욱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
2004년경에는 정현의 재료에 대한 관심이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으로 이동했다. 원유에서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는 콘크리트와 결합되어 도로포장용으로 사용되고, 이는 침목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바닥에 깔려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수명이 다하면 포클레인에 의해 파헤쳐진다. 철길에 깔려 있던 침목이 용도 폐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현은 용도 폐기된 아스콘 덩어리를 가져다가 자르고 흠집을 내어 인체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만든다(도 12). 거친 흑회색 덩어리들은 꼭 인체가 아니더라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정현은 때로는 석탄이나 막돌 같은 생경한 재료로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석탄 같은 재료는 개념미술 작가들이 사용한 적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되지 않던 재료다(도 13). 이 비전통적인 재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띠어 작품의 재료가 된 것은 아니고, 실은 작가가 오랜 기간 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재료들이다. 작가의 의식 속에 맴돌던 재료들이 적절한 시기에 작가의 힘과 에너지가 실린 조각 작품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정현은 재료를 지나치게 변형시키지 않고, 재료와 조응하고, 재료의 특질과 에너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작업을 한다.
정현의 최근 관심은 철근으로, 주물공장에서 주물을 부을 때 촉으로 사용되었던 쇠붙이나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철근을 활용하였다. 역시 용도 폐기되거나 녹슨 철근을 재활용하여 인체나 나무의 형상을 만들어 철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고철을 활용한 용접조각은 일찍이 한국전쟁 이후의 조각가들에게 중요한 조각언어였다. 폐기된 철물을 주워 모아 작업했다는 점에서 정현의 작업은 전후 세대의 조각가들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정현의 용접작업은 용도 폐기된 철물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철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철물들을 거칠게 저항하듯이 용접함으로써 각 철물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2009년 기무사의 ‘신호탄’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에서 보이듯이, 이는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방식이다.(도 14) 또한 침목이나 아스콘에 톱질하여 그 특질을 드러내는 방식과도 상통한다. 즉 정현 작업의 지향점은 작가의 내적 에너지와 재료가 내뿜는 에너지가 합치되는 지점에 있다고 하겠다.
찰흙을 각목이나 삽으로 내려쳐서 석고나 주물로 떠낸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에너지가 재료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있다. 유연한 찰흙은 부드러운 형상을 만들기에 적합한 재료인 만큼 작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수용한다. 반면, 2000년대 들어와서 사용한 침목, 아스콘, 석탄, 철근 등은 유연성과는 거리가 먼, 단단하고 질기고 거친 재료들이다. 작가는 이 재료들을 다룰 때에도 작가의 에너지를 집어넣지만, 그 목적은 재료를 작가의 의도대로 조형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재료를 톱으로 자르고 끌로 파내는 작업은 재료가 지닌 고유한 성질을 끄집어내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이 재료들 자체에 이미 충분한 에너지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작가는 재료에 톱질이나 끌질을 함으로써 재료와 만나게 되고, 이로써 작가와 재료 상호간에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현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좋은 가치를 밖으로 드러내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종의 요리사라고나 할까. 좋은 음식은 80%의 재료와 20%의 요리 능력이라고들 한다. 좋은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눈도 필요하고, 그 재료로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일, 그리고 어떻게 요리를 해서 재료의 본질을 잘 살리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올해의 작가 2006 정현󰡕, 142쪽) 정현은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작가의 의식세계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재료라고 판단되면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 물론 ‘적절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작가에게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조각에서 재료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특히 정현에게 있어서 재료는 작가의 의식세계를 표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 드로잉,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다

정현은 드로잉을 많이 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러나 일반 미술가들과 달리, 형태를 탐구하기 위해 드로잉이나 스케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초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메모를 하듯, 일기를 쓰듯 드로잉을 남긴다.”(󰡔올해의 작가 2006 정현󰡕, 143쪽). 매순간 스쳐가는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감정의 메모인 셈이다.(도 15) 그는 이렇게 축적된 메모를 토대로 작업에 임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감성적으로 느끼게 된다. 1990년대에 인체를 석고나 브론즈로 제작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조각 도구인 헤라 대신 각목이나 삽과 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따라서 정현의 작품은 전통 조각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밑작업으로 모형(maquette)을 제작하고 이를 확대하여 최종작품을 완성하던 조각방식과는 전혀 다른 식으로 완성된다.
조각은 그 속성상 단시간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작가는 최초의 분위기, 기분, 영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드로잉을 한다. 물론 그의 조각 작품이 특정한 드로잉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비슷한 이미지를 여러 장 제작하여 작품을 구상할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의 편린을 붙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동양에서 흔히 말하는 ‘일필휘지’는 즉흥성을 얘기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을 통해 축적된 에너지를 단박에 끌어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정현의 드로잉은 작가의 감정을 축적시키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조각 작품은 축적된 감정을 재료에 한꺼번에 쏟아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축적된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즉흥적으로 보이는 표현이지만 거기에서 강한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정현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인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자체도, 침목과 아스콘과 같은 비전통적 재료가 드러내는 물질성도 아니다. “하찮게 보이는 것에서 발견되는 가치, 말로 표현되기 이전의 것, 살아있음 그 자체, 날 것, 예측불허하는 이미지, 느닷없음, 비탄으로부터의 해방,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헤맴들의 깊이”(󰡔올해의 작가 2006 정현󰡕, 141쪽)를 드러내는 것, 즉 실존의 에너지를 담아내려는 것이 정현이 생각하는 조각의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정현 조각전󰡕, 원화랑 개인전도록, 1992.
조은정, 「침묵(沈黙)하는 침목(枕木)의 인간상」, 󰡔미술평단󰡕, 2001. 가을, pp. 112-117.
󰡔오늘의 작가 정현... 조각의 긍정󰡕, 김종영미술관 개인전도록, 2004
󰡔올해의 작가 2006 정현󰡕, 국립현대미술관, 2006.
󰡔CHUNG HYUN󰡕, 학고재 개인전도록,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