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전시장의 입구에 한 사람이 조각대 위에서 어깨를 깊숙이 머리를 파묻고 맨 등을 보이며 조각대에 올라 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조명은 선명하고, 등에는 삶의 파편처럼 빛과 뒤엉킨 그림자가 울퉁불퉁 새겨져 있다. 그의 등은 아우성도 없고, 변명도 없다. 모든 것이 명백하고 극적이며, 많은 것들이 실제보다 더 있어 보여야만 제대로 평가받는 이 시대에 도대체 이 ‘맨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무제>(도판1)는 조각 재료에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그 속에 온화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가 정현이 석고와 마닐라 삼을 이용하여 인체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그는 지금도 아스팔트 콘크리트, 철로용 침목 등 현대적인 재료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존재와 또 이들 사이의 존재감이 지닌 힘의 본질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석탄과 침목을 재료로 한 작품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 준다. <무제>(도판2)의 석탄 덩어리는 작가의 손길이 스친 듯, 스치지 않은 듯, 덩어리 속에 갇힌 간결한 제 본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지와 감정 과잉의 시대에 이 덩어리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마땅히 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로서 우리는 석탄 덩어리의 존재감이 주는 묵직한 힘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는 실제 철도에서 쓰여 진 15개의 침목을 주재료 한 <무제>(도판3)에서도 같은 힘을 느낄 수 있다. 무겁고 낡은 침목들이 서로를 엮어 만들어 낸 둥근 공간을 점하며 묵묵히 서 있다. 이 침목들은 기차의 격렬한 속도와 무게를 돌멩이가 깔린 불편한 밑바닥에 누워 견뎌낸 것들이다. 이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무궁화에서 KTX로 변환되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동을 지켜보며, 묵묵히 그 흐름을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 안고 존재한 것들이다. 이는 작가의 손을 통해 물질로 특성화되어 15개의 침목은 침목이되 침목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거듭나게 되었다. 정현은 이처럼 과장된 표현보다는, 찍거나 파낸 행위 등을 통해 침목이 지닌 본성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스쳐지나가는 것을 ‘아무것이 되도록’ 하는 미덕을 선물해 준다. 이는 그가 이 물질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 조각도가 언제, 어느 곳에서 멈춰야 할 때와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를 비워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침목은 작가 정현과도 매우 닮은 재료이다. 격렬한 열정보다는 온화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면, 아마도 그만큼 곰 삭이는 아픔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온화한 열정은 오늘도 물질을 가장 물질다움으로 구체화시켜 이것이 곧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들의 힘으로 표출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우리에게 ‘맨 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작가 2006 정현>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06년 10월 13일 -12월 17일까지 개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