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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인터뷰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영문판 번역

Q. 지금까지 선생님의 작업은 인체에 집중해 온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인체 조각가'라고 생각하십니까? A. 작업에서 인체 자체를 우선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게 인체는 하나의 대상일 뿐입니다. 다만 인체가 삶을 표현하기에 좋은 대상이어서 택했다고 하겠습니다. Q. 선생님의 작업은 인체의 직접적 표현이나 미적 재현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과감한 실험을 시도해 온 동년배 조각가들에 비해 인체라는 전통적 주제를 고수하시는 태도가 눈에 띕니다.

A. 인체 조각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신선함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신선함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에 눈을 조금씩 떠 가듯, 인간의 다양한 삶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것을 즐길 뿐입니다. Q. 현대미술가로서 신선함에 개의치 않는다는 말씀이 조금 의아합니다. A. 신선함에 몰두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선함은 새것에만이 아니라 오래된 것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제 경우 신선함은 저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바꾸려는 시도에서 찾아집니다. Q. 유학 시절의 작업은 선에 집중한 듯한데, 첫 개인전은 그 특징과 단절된 것처럼 보입니다. A. 두 작업 모두 '힘'에 바탕을 둡니다. 그 주제는 지금도 제 작업 속에 살아 있습니다.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구체적 표현이 없는 모호한 덩어리의 형태로 나타날 뿐입니다.

유학 시절의 작업은 사실주의를 깨뜨리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에 다가서고 싶었고, 그것이 선으로 나타났습니다. 각각의 선은 갈가리 찢긴 정신의 사실적 존재를 뜻합니다. 그때에도 양감을 지닌 작업은 있었습니다. 쇳덩어리나 나무 방망이로 치고 두드려 구체적 형상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지요. 그 끝에서 감정이 응축되며 양감이 또렷해졌습니다.

그런 양감 있는 작업이 1992년 첫 개인전에서 나타났다고 봅니다.

Q. 지금까지 조각의 본질로 '힘'이나 '에너지' 같은 말을 써 오셨습니다. 최근 작업에 보이는 즉흥적인 태도를 삶의 힘을 더 생생하게 붙잡으려는 방식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A. 드로잉을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모아 감정으로 만들고 그것을 온몸에 퍼뜨려 알맞은 도구로 재료에 가 닿게 하는 행위 속에 삶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짧은 한 구절이 긴 산문보다 더 강렬할 때가 많지요. 제가 드로잉을 하거나 쇠망치로 돌을 내리치는 행위를 즉흥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저는 여러 의도를 품고 그 행위를 합니다. 말하자면 작업에서의 제 행위는 여러 생각을 모아 감정에 실어 풀어내는, 시를 쓰는 일과 같다고 하고 싶습니다.

Q. 지금까지 재료 선택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석고와 썩은 나무를 쓰기 시작하셨고, 최근에는 침목과 석탄, 여러 가지 돌을 쓰고 계십니다. 이 모두를 잇는 일관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청동이나 대리석만이 완성된 조각 작품의 재료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많은 조각가가 석고를 쓰지만, 대개 최종 작품을 위한 습작의 재료로만 여기지요. 저는 석고가 주는 신선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돈이 없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돌 같은 것들은 하찮고 보잘것없고 구하기 쉬웠습니다. 모두 시련의 세월을 겪고 그저 내버려진 폐기물이었지요. 저는 그 날것의 느낌, 살아 있음이 좋았습니다.

Q. 선생님을 키운 것은 흙이고 선생님을 표현하게 해 준 것은 침목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침목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이 재료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A. 사실 작업에 쓰기 훨씬 전부터 침목이 지닌 엄청난 에너지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버려진 침목을 보았는데, 오랜 세월 레일의 육중한 무게와 비바람을 견뎌 온 그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한 인간이자 역사처럼 다가왔지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폐기물이지만 안에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에 들었지만 쉽게 작업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보다 더 강한 무언가를 보는 듯했던 것 같습니다. 짝사랑하듯 10년 넘게 침목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작업할 만큼 에너지가 쌓였다고 느껴 마침내 침목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마 1998년이었을 겁니다.

Q. 드로잉 작업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처음의 감정을 되살리려고, 메모를 남기거나 일기를 쓰듯 드로잉을 합니다. 조각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몇 주가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 두기에 드로잉이 알맞은 방법이었습니다. 모델을 앞에 두고 작업하면 작품의 생동감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드로잉을 앞에 놓고 작업하면서 바라보아 감정을 계속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저절로 솟아나지요.

Q. 지금 한국 조각계의 전반적인 모습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조각이라는 매체 자체가 죽어 가고 있지요. A. 조각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쇠퇴하고 있는 것은 '재현적이고 사실적이며 기념비적인 조각'입니다. 한편으로 최근의 매체 확장과 장르 이탈의 실험 속에서 조각의 영역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 조각을 생성의 원초적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조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앞과 뒤가 만나는 지점의 조각'입니다. 저는 조각이라는 매체의 주인이 아니며, 이미 전통 조각의 한계를 넘어섰고, 조각이 배제해 온 영역을 되살리려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A. 쓸데없이 심각한 작업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무거움을 바꾸어 가볍게 드러내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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